날씨와 문학

영국의 날씨는 옛부터 영국 문학의 단골 소재로 등장해 왔습니다. 복잡하고도 미세한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에 날씨 만큼 효과적인 장치가 없지요.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듯 장대비를 뿌리다가도, 어느새 파란 하늘 사이로 해가 내리쬡니다. 그러나 방심하는 순간 다시 거센 바람을 쏘아댑니다. 바로 길 건너 구름은 뽀얀데 내가 서있는 여기는 어두컴컴합니다. 이리도 개성있고 변화무쌍한 영국의 날씨는 오랫동안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해 오고 있습니다.

비를 빼고는 영국 날씨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첫 이야기를 비와 영국 문학으로 열어볼까 합니다. 영국인이 쓴 소설과 영화에 비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특히, 비는 로맨스 소설의 감초와도 같습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도 주인공들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될 때 비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지요. 흘러간 우리 가요의 가사에도 나오듯, 청춘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보면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않던가요. 날씨와 마음의 관계 속에는 분명 만국 공통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비는 차(tea)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입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예고없이 비가 오고가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1세대 여성 로맨스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에서 비는 단순한 배경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비가 제3의 캐릭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오스틴은 우리나라에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영국 조지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딸부잣집 이야기입니다. 고전적인 의복과 파스텔 톤의 인테리어가 여심을 매우 자극하지요. 이런 이유로 누군가 오스틴의 소설이 시종일관 가볍고 발랄하기만 할 거라고 예상했다면 그는 “비”를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비는 소설 속에서 청춘남녀 사이의 오해를 빚어낼 뿐 아니라, 후에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까지 훌륭히 소화해 냅니다.

Photo: Courtesy of National portrait gallery

Photo: Courtesy of National portrait gallery

 Photo: Courtesy of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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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에는 오스틴 추종자의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오스틴이 말년에 살았던 도시 바쓰(Bath)에서 오스틴 축제를 열고, 소설속 등장인물이 입었을 법한 복장을 하고 거리를 배회합니다. 이들은 비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깁니다. 그시대 복장의 완성이 모자와 우산이거든요. 제가 구경갔던 2014년에는 축제 내내 운좋게도(!) 전형적인 영국의 가을 날씨가 바쓰를 점령했습니다. 자비를 들여 참가한 행삿날 하늘이 얄궂으면 불평할 법도 한데, 전혀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Elizabeth Bennet) 복장을 한 아주머니가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가리키며 “비가 오면 리지(엘리자베스의 극중 애칭)처럼 치마를 더럽힐 수 있겠네!” 라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Photo: Courtesy of Jane Austen Festival

Photo: Courtesy of Jane Austen Festival

엘리자베스의 더럽혀진 치마는 오스틴 추종자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그걸 체험해보고 싶던 사람들에겐 그날 바쓰에 내린 비가 희소식이었겠지요. 영국의 감독 조 라이트(Joe Wright)가 2005년에 각색한 동명의 영화에도 이 장면이 등장합니다. 키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가 도도하지만 속마음은 여린 리지의 캐릭터를 이 한 장면을 통해 잘 소화했지요. 그리고 리지의 바로 이 모습에 남자주인공 미스터 다아씨(Mr. Darcy)는 반했을 겁니다. 소설에서는 오스틴 특유의 섬세한 문장에 그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주의깊은 독자라면 점차 리지에게 관심을 보이는 다아씨의 심경 변화를 이 장면 이후부터 읽어낼 수 있습니다. 궂은 날씨를 아랑곳 않고 자기 집에서 십리 길을 걸어 언니가 머무르고 있던 다아씨와 빙리(Mr. Bingley)의 저택까지 걸어온 리지의 모습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오늘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재탄생 하기에 이릅니다.

리지의 트레이드마크, 더럽혀진 치마

리지의 트레이드마크, 더럽혀진 치마

비가 오건 말건, 치마가 끌리건 말건, 입을 건 입고 쓸 건 쓰고 그 먼 길을 걸어서 언니 제인(Jane)을 보러 온 리지의 끈기있고 당찬 성격이 보입니다. 아픈 언니가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온 거지요. 비온 뒤 질퍽해진 땅이 리지의 복장에 한 몫 했습니다. 다아씨는 이쯤 되면 알아챘을 겁니다. “아, 리지는 날씨 따윈 개의치 않는 천상 영국 여자로군” 이라고요. 오락가락 속을 알 수 없는 영국의 날씨처럼, 다아씨에 대한 리지의 마음도 끊임없이 저울질을 반복합니다. 결국 이들은 리지의 언니 제인이 미스터 빙리와 맺어지고 난 후, 소설의 가장 결말에 가서야 서로의 마음을 어렵게 확인합니다.

베넷 가의 큰딸 제인 역시 비로 인해 어물쩡 로맨스를 시작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조지안 시대 영국에서는 말그대로 “연애사업”이 성했했습니다. 극성맞기로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매들의 어머니 베넷 부인(Mrs Bennet)의 등쌀 덕분에 제인은 부유한 미혼남 빙리씨의 집에 반 강제로(?) 놀러 가게 됩니다. 빙리가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른 처자가 미세스 자리를 노리기 전에 베넷 부인이 얼른 큰딸을 밀어붙인 거지요. 마차를 부르겠다는 제인을 말리며 굳이 베넷 부인은 말을 타라고 시킵니다. 베넷 부인은 자신의 큰 딸이 소극적이고 절대 먼저 남자에게 대쉬 못하는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있었던 게지요. 그리고, 엄마의 계획대로, 제인이 가는 길에 비가 옵니다. 그것도 엄청. 결국 빙리 씨 집에 도착했을 때에 이미 제인은 심한 감기에 걸려 버린 상태였고, 그집에서 빙리 씨의 간호를 받으며 며칠간 둘의 시간을 갖습니다.

말을 타고 가는 동안 날이 계속 맑아서, 수줍은 제인과 더 수줍은 빙리 씨가 마주 앉아 어정쩡하게 차만 마시고 바로 헤어졌다면 소설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또, 아픈 언니가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온 리지의 머리 위로도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서, 다아씨 앞에 리지가 땀범벅이 되어 나타났다면 그의 눈에 리지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더워하는 여주인공도 뭐 나름의 매력은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소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겠지요.

이처럼 비와 날씨의 역할을 주의깊게 찾아 읽다 보면, 오스틴의 소설 속에서 비가 무려 두 커플이나 성사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도 오해와 해프닝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앞에 잠깐 말했듯이, 리지와 다아씨의 오해는 소설 중반을 지나도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심 인물을 이어주기 위해 비가 또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리지와 다아씨와 사랑의 줄타기를 하며 서로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요인은 주로 주변인들의 방해 때문인데요. 비의 중재는 이런 의미에서 낭만적입니다. 두 남녀를 압박해 오는 사회와 사람의 간섭과 달리, 갑자기 내리는 비에는 이들을 어찌할 의도가 없으니까요. 비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들은 빗속에서 비로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합니다.

Photo: Courtesy of Fan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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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사랑고백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클리셰로 여겨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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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는 “빗속의 화해” 장면의 전통이 오스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닙니다. “오만과 편견”은 유려한 문장과 통찰력있는 주제 등의 문학적인 가치를 무시하고서라도 “비” 를 염두에 두고 한번 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입니다. 특히 영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200여년 전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친근하게 다가올 겁니다. 영국의 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니까요. 영화도 좋고, 책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당장도 구할 수 있어요. 킨들에서 무료로 배포중이고, 워털루 역 근처 로얄 마쉬(Royal Marsh)에 가면 5파운드도 안되는 가격에 중고서적을 살 수 있습니다. 분명 일기예보에선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이 수상하리만치 맑을 때, 그런데 구름이 급할 때. 그런 날 얼른 이 책을 집어들고 나가세요. 그리고 야외 테라스가 딸린 카페에 앉아 첫 페이지를 펼치세요. 영국의 날씨처럼 한 눈에 절대 알 수 없는 여자 리지의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사랑, 미스터 다아씨와의 감정의 숨바꼭질을 함께하고 있는 당신의 눈 앞에 비가 긋기 시작 했을때, 리지의 다아씨처럼 당신에게도 새로운 누군가가 찾아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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