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시의 방은 아주 자그만 창문 하나 달랑 있는 옥탑방이었다.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마저도, 두꺼운 커튼을 치면 완벽하게 차단되, 하시의 방은 줄곧 암실과도 같은 깜깜한 방이 되었다. 옥탑방이라서 그런지 하시가 눕고 있는 침대가 놓인 곳의 천장은 유난히도 낮았는데, 그 천장은 하시가 일어날 때마다 기분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 날 아침도 언제나처럼 하시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낮은 천장과 마주했다. 그리고 부스스한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창문 쪽으로 걸어가 커튼을 쳤다. 좁은 창에서 살며시 들어오는 빛은, 어두컴컴했던 방을 조금이나마 밝게 해주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3일 전 하시가 찍은 사진을 비추고 있었다. 빛을 따라 하시의 눈길이 자연스레 사진들을 향했다.
“야 이거봐, 이거 뭘까”
“와 얘 진짜 예쁘게 생겼다”
“아 미친놈아, 그거 말고. 여자애가 공중을 걸어 올라가다가 갑자기 사라졌자나”
“미친놈은 내가 아니라 너네”
침대 바로 앞 테이블에 놓인 사진들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외면하며 하시는 다시 침대에 다시 털썩 누웠다. 이 30여 장의 사진을 찍고 3일간 여러 명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고, 하시는 더 이상 미친놈이라는 시선을 받기 싫어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왠지 본능적으로 그 사진들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진을 삭제할 수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헛것을 본 게 아니라고, 스스로 확인을 하고자 인화한 사진들은 며칠째 테이블 위에서 하시를 괴롭히고 있었다.
플랏메이트인 라파엘이 하시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하.. 혼자 살고 싶다’
라파엘은 거침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별 감흥 없이 사진들을 빠르게 훑어본 뒤, 테이블 위에 가볍게 던져 돌려놓았다. 그러다 다시 상체를 구부려 사진을 보았다. 그때 하시는 실낱같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라파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너 이 여자애 좋아해서 이렇게 많이 찍었지. 똑같은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그냥 빨리 라파엘이 이 방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하시는 자신이 나가는게 더 빠르겠다고 판단하며 외출할 채비를 시작했다.
‘내가 정말 미쳐버린 걸까’
하시는 혼돈 섞인 잡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물, 사과 두 개, 그리고 버터빵을 배낭에 챙겨 카메라와 함께 어깨에 맸다.
“사진 찍으러 가는거야?”
“응”
“너도 좀 놀면서 해라,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좋은 사진들이 많이 찍히는거야”
이 아무 생각 없는 팔자 좋은 놈이 당장 내 방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또 한 번 생각을 하며 하시는 쓴 미소를 띠며 방에서 나갔다.
*******
‘제길 파엘라’
촬영에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식은 왜 인생을 즐기라는 둥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라고 하시는 생각했다. 사진을 찍는 일이 행복해서, 꿈이 생긴 내가 자랑스러워서 시작한 이 길이, 지금은 왜 이리도 지옥 같은 것인지.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지. 또다시 그렇게 이유 모를 짜증 섞인 자괴감에 빠지려는 순간, 하시는 문득 그 빨간 가방의 여자애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미친놈아’
부랴부랴 도망치듯이 사진들의 잔상을 머릿속에서 흩트리며 하시는 다시 촬영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은 잘 찍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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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채 의자에 앉아있는 하시를 마주한 직원이 하시의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넘겼다.
“잘 봤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하시 씨는 왜 영국에서 사진을 찍으시나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신선한 시각을 가진 영국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수 십 번도 받은 질문이었다. 마치 아이폰에게 오늘의 날씨를 물었을 때 대답해 주는 시리처럼 반사적으로, 기계적으로 하시는 대답했다. 그러자 숨 막히는 적막이 둘 사이에 이어졌다.
“그렇군요, 결과는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일 초가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다. 갑자기 자신감에 차 대답한 자신의 말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시는 이 에이전시에서는 절대 연락이 오지 않겠구나 확신하며 건물을 벗어났다.
*******
하시는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아주 거칠게 편의점 문을 열며 들어갔다.
‘하.. 담배..’
아주 좁은 편의점을 세바퀴 반을 돌고서 하시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편의점 직원에게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한 뒤 편의점을 나왔다. 그리고 편의점을 들어갈 때와는 아주 상반된 힘없는 걸음걸이로 집으로 향했다. 집 현관문에서부터 시끄러운 음악이 거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엘라가 또 친구들과 함께 플랏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집에 가고싶다’
정말 그 누구와도 인사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던 하시는 최대한 파엘라 일행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방은 아주 깜깜했다. 그러나, 아침에 파엘라를 피해 서둘러 나오느라 커튼을 치지 못한 덕에 작은 창문에서 가로등 빛이 조금이나마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그 빛은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하시는 자연스레 또다시 테이블 위의 그 사진들에게 눈길이 갔다.
‘왜 나한테는 이런 일만 벌어지는 걸까’
인생을 즐겨야지, 하시 씨는 왜 사진을 찍으시나요, 왜 영국에서, … 오늘 하루 종일 하시의 가슴을 후벼 판 말들이 귓속에 윙윙 맴돌며 괴롭혔다. 그 순간, 하시는 울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있는 사진을 손으로 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자신이야말로 알고 싶었다. 왜 그 좋아하는 담배도 돈이 없어 못 피고, 가족과 친구의 응원은 부담스러워지고, 그들과 점점 멀어지면서까지 이곳에서 이렇게 궁상을 떨며 버티고 있는 걸까.
하시는 그 어떤 것 보다도,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자신을 못 미더워 하는 이 현실에 치를 떨며 테이블 앞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창문을 통해 스며든 가로등 빛이 하시의 눈에 단 한 장의 사진을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사진 속의 그 여자애가 하시의 카메를 똑똑히,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