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든의 가장자리,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

캠든(Camden)은 우리에게 캠든 록(Camden lock)이라 즐겨 불리우는 빈티지 마켓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런던에 속한 하나의 큰 구(borough)입니다. 런던대의 캠퍼스들과 도서관, 박물관이 자리한 블룸즈버리가 캠든의 시작지점인데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형형 색색의 벽화들과 매대에 넘칠듯 담긴 소품들로 요란한 길거리 풍경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자리한 캠든의 이미지일 겁니다. 제게도 캠든은 개성 강한 젊은이들의 동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런던에 처음 발을 딛은 날 무작정 찾아간 그곳에서 셔터 몇번을 누른 후로 캠든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친구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기 전까지는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던 공동묘지가 있어. 이번 토요일에 바쁘지 않으면 캠든에서 만나지 않을래?”

캠든의 공동묘지라… 파리의 페르 라셰즈(Père Lachaise)가 떠올랐습니다. 쇼팽과 오스카 와일드가 묻혀있는 그곳. 입소문과 영화를 통해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페르 라셰즈 같은 묘지가 런던에, 그것도 캠든에 있다니, 단연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제안이었습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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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기차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노던 라인의 캠든 역을 지나쳐 다른 캠든으로 향했습니다. 하이게이트 쎄메트리(Highgate Cemetrey)라는 이름의 공동묘지가 위치한 런던의 북쪽으로요. 구글 맵에서는 하이게이트까지의 경로를 아치웨이(Archway) 역으로 안내하는데요. 빠르지만 답답한 공기를 견디고 있어야 하는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보고 싶다면, 느긋하게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오버그라운드를 타고 가스펠 오크(Gospel Oak) 역에서 내리길 추천합니다. 묘지까지10분 이내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런던에도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역 주변 길은 한산했습니다. 차도 거의 없었어요. 차가운 음료를 손에 들고 짝을 지어 걸어가는 10대들과, 장바구니를 다리 사이에 두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노인, 그리고 조깅을 하는 주민들의 풍경은 그동안 보아 왔던 캠든 타운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런던의 차분한 지역이라면 메이페어(Mayfair)나 싸우스 켄징턴(South Kensington)처럼 부촌이거나 도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기 마련인데, 하이게이트는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동네 특유의 정돈된 질서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저 삶을 살고 있었었습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친구와 함께 묘지에 들어섰습니다. 첫인상은 페르 라셰즈와 아주 닮았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는데요. 입구에서부터 살포시 몸을 감싸며 저를 안으로 안내하는 공기의 느낌은 9월의 오후에 방문했던 파리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삼삼오오 몰려 묘지 안내 지도를 보는 관광객의 모습들도 익숙했어요. 사람들은 느릿느릿 그러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내게도 친구가 속삭였습니다.

“가이드가 그러는데, 우리는 1800년대 묘지부터 함께 걷기 시작할거래. 소설 속으로 여행하는 기분일 것 같아.”

정말로, 이날 하이게이트에서 보낸 두시간은 마치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을 읽는듯한 기분을 선사했습니다. 무리중에 한명이 가이드였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투어가 시작되었지요. 거창한 인사 대신 그는 몸을 숨기고 있던 입구의 처마 밑에서 한발짝 앞으로 나와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고개가 저절로 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의 첫 문장은 파리의 묘지와 이곳이 다르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 했어요.

“하이게이트는, 사람들의 묘지(people’s cemetery) 입니다. 이곳에 묻혀 있는 유명인사의 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이 모두 묻히기를 원했던 이 묘지가 바로 런던의 유명인사였지요.”

예술가도, 평민도, 귀족의 꼬리표도 이세상을 떠나고 나면 한 때를 살았던 사람의 흔적으로만 남게 됩니다. 파리와 런던의 두 공동묘지에서 받은 비슷한 느낌은 바로 이것, 나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자취였습니다. 그러나 페르 라셰즈와 구별되는 하이게이트만의 특이점이 있다면, 위에도 말했듯, 한편의 소설처럼 꾸며진 묘지의 구성입니다. 하이게이트는 그야말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 문화의 한 결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아주 세심히 다듬지는 않은 채 내버려 둔 듯 가꾸어 놓은 영국식 정원을 연상시키는 잡초들, 그리고 두서없이 이리 저리로 난 오솔길은 공동묘지보다는 야산에 가까워 보였어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밤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1800년대에 중후반에 유행했던 심령소설과 유령이야기의 배경이라 해도 손색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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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천천히 우리를 큰 길로 인도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무덤들이 있는 묘지의 가장 안쪽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우리 일행은 시간 여행자라도 된 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앞서가는 가이드를 놓칠까 부지런히 줄을 지어 걸었습니다. 그가 처음 멈추어 선 곳은 다양하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빽빽하게 땅을 채운 많은 묘비들의 틈바구니 속에 특징 없이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느 작은 묘비였습니다.

“마거렛이라고 불렸던 이 여인은… 네, 30년 정도를 살았네요. 이곳에 마거렛을 묻어주기 위해 가족들은 조금 무리를 했을 겁니다.”

캠든과 빅토리아 시대는 인연이 깊습니다. 영국의 1800년대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차를 마시고 양산을 쓰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는 시대에서 급격히 결별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라 전역에 걸쳐 근대화가 진행 중이었고, 도시는 미친듯이 팽창하고 있었지요. 정부는 도심에 집중된 인구들을 수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런던의 위생과 주거환경은 엉망인 데다가 빈부격차의 문제도 심각했는데요. 2편에서 다루었던 런던의 뒷골목과 보로 마켓 주변의 이야기가 바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와 동시대에 탄생했습니다. 신흥 부자들은 런던 안에서 개발이 덜된 지역들 중 정착할 만한 곳, 소위 뉴타운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캠든은 위치와 환경 등 여러 면에서 그들의 입맛에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출처: camden.gov.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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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개장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이처럼 거침없이 번영을 누리던 시대, “해가지지 않는 나라” 를 살고 있던 빅토리아조 영국인들의 자부심 저변을 서서히 엄습해 오고 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장례’라는 의식으로 발현된 결과입니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현세에서 내세로 사람들의 호기심의 영역도 이동하고 있었지만,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현학적인 고민에 빠져들기에 당장 부자들의 삶은 너무나 풍요로웠고, 평민들의 삶은 너무나 고단했습니다.

런던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무의식을 관통하고 있던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은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를 단숨에 유명인사로 이끌었습니다. 부자들은 너도나도 땅을 사들여 값비싼 장례를 치뤄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명복을 빌었어요. 그들에게 애도의 이상적인 수단은 아름다운 조각이었습니다. 요절한 사람의 묘비에는 반만 덮인 채 날아갈 듯한 보자기(drape)를, 또 슬픔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표상으로 항아리(urn) 조각상을 묘비 위에 새겨 올렸는데요. 생전에 아꼈던 것을 조각해 주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크게 인기를 끌었던 복싱선수 탐 세이어스(Tom Sayers)의 묘비 앞을 지키는 충견 조각상이 그 예입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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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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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서민들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죽음에 대한 감정은 같았습니다. 넉넉치 않은 형편이었지만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최선을 다해 애도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이승에서 누리지 못한 행복이 저승에서만이라도 가능하기를 그들은 바랐습니다. 가이드가 우리에게 처음 보여준 마거렛의 가족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단촐한 묘비에 빼곡이 새겨넣은 글귀는 과장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인생을 몇줄로 응축한, 잘 쓰여진 소설의 서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곧이어 가이드는 가족 묘지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카타콤(catacombe) 이라 불리는 납골당의 내부는 공포소설에서 자주 묘사하던 그대로, 서늘한 기운을 사방에서 내뿜고 있었습니다. 돌들은 흙이 깔끔히 발라지지 않은 채 한쪽 벽이 허물어져 있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관을 꺼내어 다른곳으로 옮긴 흔적이 그대로였습니다. 햇빛이 따사롭던 바깥의 기운은 온데간데 없고, 납골당 특유의 냄새와 한기가 우리 일행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흡사 도굴꾼이라도 다녀간 듯 흐트러져 있는 암벽 언저리에 손전등 불을 더듬고 있던 가이드가 윗줄 한켠의 작은 돌무덤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어딘가에 소설가 찰스 디킨즈의 딸 도라(Dora)가 묻혀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도라는 디킨즈 슬하 열명의 자식들 중 아홉번째 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아홉 달밖에 살지 못했어요. 얼마간 여기에 있다가, 디킨즈의 아내 캐써린(Catherine)이 몇달 지나지 않아 곧이어 세상을 떠나자 도라도 엄마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좀전까지도 오싹하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그때부터 조금씩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더이상 가이드가 가리킨 납골당이 흉측한 돌무덤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돌들 사이로 조금씩 들어오는 바깥에서의 햇살 줄기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디킨즈도 200여년 전 바로 여기에 망연히 서 있었겠지요. 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의 등장인물을 따라 이름 지어진 도라는 태어나서부터 병약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녀는 디킨즈의 아홉번째 딸로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홉번째 달에 영원한 잠에 들었습니다.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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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legraph.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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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서 연민으로- 바로 이것이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 보내는 두어시간 동안 가장 자주 느껴지는 감정이고,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끝이 정해진 여정이라는 진실로부터 무덤덤한 척 살아갑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묻혀 있는, 조국이 아닌 나라의 묘지에서의 내적 경험은 늘 저의 마음 한켠을 억누르고 있던 두려움의 실체와 정직하게 마주하게 해 주었습니다. 천천히 묘비의 문구들을 읽고, 사연을 듣고, 앞서간 평범한 삶의 모습들을 상상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일행은 모두 소설가와도 같았습니다. 하이게이트는 죽음을 담고 있으면서도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가장 밀착해 있는, 문학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묘지라고 해서 하이게이트 쎄메트리에 유명인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서편과 동편 묘지 중 투어는 서편에서만 이루어지는데요. 길건너 묘지에서 철학자이자 현대 정치사회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의 지식인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망명자 신분으로 전전해야 했던 그는 파리에서 추방당한 뒤 1849년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1883년 세상을 뜰때까지 영국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위엄있게 세워진 그의 흉상 밑에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흔적인 메모들과 꽃다발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문구가 묘비에 새겨져 있지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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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적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캠든의 가장자리, 하이게이트. 무덤마다의 사연들이 얼어붙어 있던 마음의 벽을 부드럽게 무너뜨리고, 시대별로 조금씩 아이템을 달리하는 상징들 역시 약간의 재미와 호기심을 더합니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디자인들과 사람들이 동경했던 취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디킨즈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류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도 메리 앤 에반스(Mary Ann Evans)라는 본명이 적힌 묘비 아래에 잠들어 있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공 너머에 대한 상상력과 현세에서의 믿음이 버무려진 결정체들을 하이게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런던 길

런던에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찾아가 보고 싶은 길, 자연스레 걷게 되는 길, 무심코 지나치는 길이 그것인데요.

예컨대 비틀즈의 앨범 자켓 사진으로 단숨에 명소가 되어버린 아비 로드(Abbey Road)와 셜록 홈즈의 주거지 베이커 스트릿(Baker Street)은 열성적인 팬이 아니라도 런던에 왔다면 한번쯤 찾아가 보고 싶은 길입니다. 그런가 하면, 도심을 관통하는 옥스포드 스트릿(Oxford Street)과 피카딜리(Piccadilly)는 런던에서 보내는 하루 중 한번은 자연스레 걷게 되는 길이죠. 이 두 길은 오늘도 회사원과 학생, 관광객들, 그리고 꿈을 좇는 젊은이들로 북적입니다. 그렇다면 런던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길은 어디이고,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먼저 무심코 지나치는 길은 우리가 어느 목적지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로 간주하고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길을 말합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그야말로 깨알같이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한 첫날 최대한 ‘생산적인’ 동선을 짜기 위해 이길 저길을 어림잡고 궁리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우리의 관심은 그날 보기로 정한 명소들을 단시간에 연결하는 최단 경로 찾기에 집중됩니다. 데이 캡(런던 시내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중 일정 금액이 초과하면 더이상 요금이 붙지 않는, 일종의 정액제)의 혜택을 믿고 버스와 튜브를 갈아 타며, 우리는 길 위에서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시간을 아까워 합니다. 그러나, 아비 로드에는 정말 아비 로드밖에 없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물론 팬들에게는 비틀즈가 건넌 횡단보도에서 찍는 사진 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 무심결에 지나치는 길들에 숨은 이야기들의 합이 뜻밖에도 아비 로드에 담긴 사연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길의 지극히 평범한 집 담벼락에 동그라미 모양의 표식이 붙어 있다면, 걸음을 멈추고 잠시 거기에 새겨진 이름과 짧은 이야기를 감상하세요.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 사이로 유독 고풍스런 디자인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면, 또 한번 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 장면을 기억하세요. 그 길의 그 날 그 느낌은 나 혼자만 알 수 있는 나만의 런던 지도가 됩니다.

런던의 여러 길들을 비틀즈 뿐 아니라 여러 음악가들이 거쳐갔습니다.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잠시 거주했던 브룩 스트릿(Brook street). 메이페어(Mayfair)에 있습니다. 출처: BBC 뉴스 사진2) 신구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런던의 대표적인 길, 소호의 그레이트 말보로 스트릿(Great Marlborough Street)에 위치한 리버티 백화점. 출처: www.Victorianweb.org

런던의 여러 길들을 비틀즈 뿐 아니라 여러 음악가들이 거쳐갔습니다.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잠시 거주했던 브룩 스트릿(Brook street). 메이페어(Mayfair)에 있습니다. 출처: BBC 뉴스

신구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런던의 대표적인 길, 소호의 그레이트 말보로 스트릿(Great Marlborough Street)에 위치한 리버티 백화점. 출처: www.Victorianweb.org

신구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런던의 대표적인 길, 소호의 그레이트 말보로 스트릿(Great Marlborough Street)에 위치한 리버티 백화점. 출처: www.Victorianweb.org

무심코 지나치는 길은 또한 도심을 헤매이다 얼떨결에 잘못 들어버린, 런던의 작은 골목길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앨리(alley)라고 부르는 이 작은 길들은 일정이 빠듯한 관광객들에게 당혹감을 안기곤 하죠. 휴대전화의 GPS가 신호를 잃어 엉뚱한 길로 안내해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 들어서게 되면, 미로같은 통로에 갇혀 혹시 길을 잃게 될까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왔던 길을 돌아 큰길로 나와서 다시 지도 보기를 반복하며 인파에 기꺼이 몸을 섞습니다. 그러나 쇼핑객의 홍수를 이루는 날씨 좋은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빅 세일 기간에는 큰 길도 딱히 길찾기의 답을 주지 않습니다. 강남대로보다 몇배로 붐비는 옥스포드 스트릿에서 발이 반쯤 허공에 뜬 채 내 의지대로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뿐더러 유쾌한 일도 아닙니다. 구글 맵은 이제 더이상 낯선 이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우리에게 선물했지만, 안그래도 사람이 많은 큰길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기현상을 낳았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은 일반적인 경로만을 안내하니까요.

크리스마스 시즌의 옥스포드 스트릿. 일간지 텔라그라프(Telegraph)는 이를 런던 시내의 ‘일반적인 광경(general view)’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처: Telegraph

크리스마스 시즌의 옥스포드 스트릿. 일간지 텔라그라프(Telegraph)는 이를 런던 시내의 ‘일반적인 광경(general view)’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처: Telegraph

그러나 몇 블록만 지나쳤을 뿐인데도 전세계를 한바퀴 돈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언어와 인종이 오가는 런던의 큰길을 걷다 보면, 사람의 말과 발소리들로부터 멀어져 잠깐의 고요를 찾고 싶은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요즘처럼 슬슬 열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시원한 골목길 그늘에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기도 하고요. 잘못 들어선 앨리에 그 답이 있습니다. 몇몇 앨리들은 뜻밖에도 으스스하고, 적막하며, 미로같습니다. 이왕 좌표를 잃어버린 김에, 한 블록 비껴난 그 앨리를 그대로 미끄러지듯 걸어보는건 어떨까요. 당초 계획에서 조금 벗어나도, 촉각을 다투는 출퇴근 길만 아니라면, 조금은 두렵고 그래서 두근두근한 그 방황은 길어도 10분을 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곳곳에 튜브 스테이션과 버스 정류장이 있으니까요. 큰 길가에 울려퍼지는 경적소리와 상점의 노랫소리가 스타카토와 같다면, 앨리가 주는 한 템포 느린 박자도 엄연히 런던의 길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일부입니다.

날씨에 따라서 조금은 괴기스럽게도 보이는 앨리. 비오는 날이면 대부분 이런 풍경이죠. 출처: by Tim Arai, Flicker

날씨에 따라서 조금은 괴기스럽게도 보이는 앨리. 비오는 날이면 대부분 이런 풍경이죠. 출처: by Tim Arai, Flicker

우리가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는 앨리들이 주는 이런 색다른 느낌은 영국의 일부 예술가들에게 ’진짜 런던’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소위 말하는 그 ‘뒷골목’을 무대로 하여 탄생했습니다. 아써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셜록(Sherlock)에서 셜록이 범인을 쫓을 때 그를 앞지르기 위해 쓰는 비법은 소호의 샛길입니다. 전혀 길이 더 있을 것 같지 않은 막다른 골목과 가정집 사이를 검은 코트 차림으로 사뿐히 그리고 거리낌 없이 누비죠. 아마도 은밀한 수사를 해야하는 셜록에게는 런던의 앨리들이 탐정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최적화 된, 지극히 사적이고 ‘셜록 스러운’ 길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작품들에서 런던의 뒷골목은 소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후미진 시장길에 모여 삽니다. 무대는 주로 런던 브릿지에서 세인트 폴 성당에 이르는, 오늘날 시티 오브 런던으로 분류되는 지역인데요. 예컨대 “리틀 도릿(Little Dorrit)”의 주인공 도릿은 보로 마켓(Borough Market) 근처의 마셜씨 감옥에서 태어나 자란 소녀입니다. 실제로 디킨스가 살았던 시절의 보로 지역은 가난한 노동자들과 죄수들이 하루 먹을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지금도 보로에 가면 푸드 트럭들이 즐비한 마켓 뒷편에서 그 역사의 흔적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 소설 역시도 2007년 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수상한 택시를 따라잡기 위해 머릿속의 샛길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는 셜록. 출처: www.smithsonianmag.com

수상한 택시를 따라잡기 위해 머릿속의 샛길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는 셜록. 출처: www.smithsonianmag.com

 “리틀도릿”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동명의 카페. 보로 마켓 옆 철도역 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출처: pencefn.wordpress.com

“리틀도릿”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동명의 카페. 보로 마켓 옆 철도역 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출처: pencefn.wordpress.com

이렇듯 런던 곳곳에 흩어진 뜻밖의 길들은 오늘도 우리가 찾아주고 탐험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숨은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자신의 이름을 통해 손짓합니다. 무심코 지나쳐 걸었던 그 길들의 부름에 응답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세인트 폴 성당 근처의 칩사이드(Cheapside) 길에 들러보세요. 지금은 말끔하게 다듬어져 별다른 개성 없는 새길 같아 보이지만, 이 칩사이드의 역사는 철도가 들어오기도 훨씬 전, 그러니까 자그만치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의 재래시장처럼, 칩사이드도 템즈 강을 통해 들어온 물건들을 사고파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이라는 어원에서 ‘값이 싸다’는 뜻으로 변한 영어표현 “칩(cheap)”이 들어간 이름 부터 이 길의 전체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죠. 다양한 지역의 농부들이 다양한 수확물을 소와 말에 가득 싣고 드나들다보니, 이 일대에 교통혼잡이 빚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목 별로 줄을 지어 다니기 시작했고, 작은 길들이 그대로 골목 이름으로 굳어졌고요.

칩사이드의 과거와 현재를 합성한 사진

칩사이드의 과거와 현재를 합성한 사진

오늘날의 칩사이드. 출처: Wikipedia

오늘날의 칩사이드. 출처: Wikipedia

그 흔적을 지금도 찾을 수 있습니다. 칩사이드에 들어서면, 예상을 벗어나는 골목 골목의 이름들이 당신을 반길 것입니다. 몇개만 나열해 볼까요. “브레드 스트릿(Bread street),” “우드 스트릿(Wood Street),” “밀크 스트릿(Milk Street),” “허니 레인(Honey Lane),” “포울트리 앤 프라이데이 스트릿(Poultry and Friday Street)”… 각각의 길들이 무엇을 사고 팔았는지 감이 오시죠. 이 마지막 길이 특히 재밌다고 생각되는데요. 금요일마다 피쉬앤 칩스를 먹는 영국의 전통, “피쉬 프라이데이”의 유래까지도 저 길의 이름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저 옛날엔 빵을 팔았을 브레드 스트릿. 출처: jtchatter.blogspot.com

저 옛날엔 빵을 팔았을 브레드 스트릿. 출처: jtchatter.blogspot.com

칩사이드 뿐 아니라 런던의 많은 길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정비되고, 복원되고, 필요에 따라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며 변화를 거듭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그 길들을 바쁘게 지나쳐 갑니다. 행복의 의미가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있듯, 길의 매력도 숨은 이야기를 알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비틀즈와 셜록 홈즈처럼 너무나 유명해져 전설이 되어버린 길이나,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번화가를 걷는 일보다는 수고롭지만, 그만큼 비밀스럽고 가치롭습니다. 각각의 길은 오랜 시간의 더께와 함께 깊어진 하나의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걸으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름을 보며 상상하고, 그렇게 시간을 탐험해 보세요. 경로에서 벗어나 뜻밖의 시공간을 향해 내딛는 순간, 당신의 그 발걸음이 당신만의 런던 지도에 깊이를 더할 것입니다.

날씨와 문학

영국의 날씨는 옛부터 영국 문학의 단골 소재로 등장해 왔습니다. 복잡하고도 미세한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에 날씨 만큼 효과적인 장치가 없지요.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듯 장대비를 뿌리다가도, 어느새 파란 하늘 사이로 해가 내리쬡니다. 그러나 방심하는 순간 다시 거센 바람을 쏘아댑니다. 바로 길 건너 구름은 뽀얀데 내가 서있는 여기는 어두컴컴합니다. 이리도 개성있고 변화무쌍한 영국의 날씨는 오랫동안 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해 오고 있습니다.

비를 빼고는 영국 날씨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첫 이야기를 비와 영국 문학으로 열어볼까 합니다. 영국인이 쓴 소설과 영화에 비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특히, 비는 로맨스 소설의 감초와도 같습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도 주인공들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될 때 비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지요. 흘러간 우리 가요의 가사에도 나오듯, 청춘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보면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않던가요. 날씨와 마음의 관계 속에는 분명 만국 공통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무언가 신비로운 것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비는 차(tea)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입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예고없이 비가 오고가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1세대 여성 로맨스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에서 비는 단순한 배경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비가 제3의 캐릭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오스틴은 우리나라에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영국 조지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딸부잣집 이야기입니다. 고전적인 의복과 파스텔 톤의 인테리어가 여심을 매우 자극하지요. 이런 이유로 누군가 오스틴의 소설이 시종일관 가볍고 발랄하기만 할 거라고 예상했다면 그는 “비”를 고려하지 않은 겁니다. 비는 소설 속에서 청춘남녀 사이의 오해를 빚어낼 뿐 아니라, 후에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까지 훌륭히 소화해 냅니다.

Photo: Courtesy of National portrait gallery

Photo: Courtesy of National portrait gallery

 Photo: Courtesy of IMDB

Photo: Courtesy of IMDB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에는 오스틴 추종자의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오스틴이 말년에 살았던 도시 바쓰(Bath)에서 오스틴 축제를 열고, 소설속 등장인물이 입었을 법한 복장을 하고 거리를 배회합니다. 이들은 비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깁니다. 그시대 복장의 완성이 모자와 우산이거든요. 제가 구경갔던 2014년에는 축제 내내 운좋게도(!) 전형적인 영국의 가을 날씨가 바쓰를 점령했습니다. 자비를 들여 참가한 행삿날 하늘이 얄궂으면 불평할 법도 한데, 전혀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Elizabeth Bennet) 복장을 한 아주머니가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가리키며 “비가 오면 리지(엘리자베스의 극중 애칭)처럼 치마를 더럽힐 수 있겠네!” 라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Photo: Courtesy of Jane Austen Festival

Photo: Courtesy of Jane Austen Festival

엘리자베스의 더럽혀진 치마는 오스틴 추종자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그걸 체험해보고 싶던 사람들에겐 그날 바쓰에 내린 비가 희소식이었겠지요. 영국의 감독 조 라이트(Joe Wright)가 2005년에 각색한 동명의 영화에도 이 장면이 등장합니다. 키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가 도도하지만 속마음은 여린 리지의 캐릭터를 이 한 장면을 통해 잘 소화했지요. 그리고 리지의 바로 이 모습에 남자주인공 미스터 다아씨(Mr. Darcy)는 반했을 겁니다. 소설에서는 오스틴 특유의 섬세한 문장에 그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주의깊은 독자라면 점차 리지에게 관심을 보이는 다아씨의 심경 변화를 이 장면 이후부터 읽어낼 수 있습니다. 궂은 날씨를 아랑곳 않고 자기 집에서 십리 길을 걸어 언니가 머무르고 있던 다아씨와 빙리(Mr. Bingley)의 저택까지 걸어온 리지의 모습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오늘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재탄생 하기에 이릅니다.

리지의 트레이드마크, 더럽혀진 치마

리지의 트레이드마크, 더럽혀진 치마

비가 오건 말건, 치마가 끌리건 말건, 입을 건 입고 쓸 건 쓰고 그 먼 길을 걸어서 언니 제인(Jane)을 보러 온 리지의 끈기있고 당찬 성격이 보입니다. 아픈 언니가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온 거지요. 비온 뒤 질퍽해진 땅이 리지의 복장에 한 몫 했습니다. 다아씨는 이쯤 되면 알아챘을 겁니다. “아, 리지는 날씨 따윈 개의치 않는 천상 영국 여자로군” 이라고요. 오락가락 속을 알 수 없는 영국의 날씨처럼, 다아씨에 대한 리지의 마음도 끊임없이 저울질을 반복합니다. 결국 이들은 리지의 언니 제인이 미스터 빙리와 맺어지고 난 후, 소설의 가장 결말에 가서야 서로의 마음을 어렵게 확인합니다.

베넷 가의 큰딸 제인 역시 비로 인해 어물쩡 로맨스를 시작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조지안 시대 영국에서는 말그대로 “연애사업”이 성했했습니다. 극성맞기로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매들의 어머니 베넷 부인(Mrs Bennet)의 등쌀 덕분에 제인은 부유한 미혼남 빙리씨의 집에 반 강제로(?) 놀러 가게 됩니다. 빙리가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른 처자가 미세스 자리를 노리기 전에 베넷 부인이 얼른 큰딸을 밀어붙인 거지요. 마차를 부르겠다는 제인을 말리며 굳이 베넷 부인은 말을 타라고 시킵니다. 베넷 부인은 자신의 큰 딸이 소극적이고 절대 먼저 남자에게 대쉬 못하는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있었던 게지요. 그리고, 엄마의 계획대로, 제인이 가는 길에 비가 옵니다. 그것도 엄청. 결국 빙리 씨 집에 도착했을 때에 이미 제인은 심한 감기에 걸려 버린 상태였고, 그집에서 빙리 씨의 간호를 받으며 며칠간 둘의 시간을 갖습니다.

말을 타고 가는 동안 날이 계속 맑아서, 수줍은 제인과 더 수줍은 빙리 씨가 마주 앉아 어정쩡하게 차만 마시고 바로 헤어졌다면 소설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또, 아픈 언니가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온 리지의 머리 위로도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서, 다아씨 앞에 리지가 땀범벅이 되어 나타났다면 그의 눈에 리지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더워하는 여주인공도 뭐 나름의 매력은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소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겠지요.

이처럼 비와 날씨의 역할을 주의깊게 찾아 읽다 보면, 오스틴의 소설 속에서 비가 무려 두 커플이나 성사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도 오해와 해프닝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앞에 잠깐 말했듯이, 리지와 다아씨의 오해는 소설 중반을 지나도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심 인물을 이어주기 위해 비가 또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리지와 다아씨와 사랑의 줄타기를 하며 서로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요인은 주로 주변인들의 방해 때문인데요. 비의 중재는 이런 의미에서 낭만적입니다. 두 남녀를 압박해 오는 사회와 사람의 간섭과 달리, 갑자기 내리는 비에는 이들을 어찌할 의도가 없으니까요. 비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들은 빗속에서 비로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합니다.

Photo: Courtesy of Fanpop

Photo: Courtesy of Fanpop

비와 사랑고백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클리셰로 여겨지나 봅니다

비와 사랑고백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클리셰로 여겨지나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는 “빗속의 화해” 장면의 전통이 오스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닙니다. “오만과 편견”은 유려한 문장과 통찰력있는 주제 등의 문학적인 가치를 무시하고서라도 “비” 를 염두에 두고 한번 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입니다. 특히 영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200여년 전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친근하게 다가올 겁니다. 영국의 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니까요. 영화도 좋고, 책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당장도 구할 수 있어요. 킨들에서 무료로 배포중이고, 워털루 역 근처 로얄 마쉬(Royal Marsh)에 가면 5파운드도 안되는 가격에 중고서적을 살 수 있습니다. 분명 일기예보에선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이 수상하리만치 맑을 때, 그런데 구름이 급할 때. 그런 날 얼른 이 책을 집어들고 나가세요. 그리고 야외 테라스가 딸린 카페에 앉아 첫 페이지를 펼치세요. 영국의 날씨처럼 한 눈에 절대 알 수 없는 여자 리지의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사랑, 미스터 다아씨와의 감정의 숨바꼭질을 함께하고 있는 당신의 눈 앞에 비가 긋기 시작 했을때, 리지의 다아씨처럼 당신에게도 새로운 누군가가 찾아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