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찾아서 (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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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의 방은 아주 자그만 창문 하나 달랑 있는 옥탑방이었다.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마저도, 두꺼운 커튼을 치면 완벽하게 차단되, 하시의 방은 줄곧 암실과도 같은 깜깜한 방이 되었다. 옥탑방이라서 그런지 하시가 눕고 있는 침대가 놓인 곳의 천장은 유난히도 낮았는데, 그 천장은 하시가 일어날 때마다 기분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이 날 아침도 언제나처럼 하시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낮은 천장과 마주했다. 그리고 부스스한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창문 쪽으로 걸어가 커튼을 쳤다. 좁은 창에서 살며시 들어오는 빛은, 어두컴컴했던 방을 조금이나마 밝게 해주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3일 전 하시가 찍은 사진을 비추고 있었다. 빛을 따라 하시의 눈길이 자연스레 사진들을 향했다.

“야 이거봐, 이거 뭘까”
“와 얘 진짜 예쁘게 생겼다”
“아 미친놈아, 그거 말고. 여자애가 공중을 걸어 올라가다가 갑자기 사라졌자나”
“미친놈은 내가 아니라 너네”

침대 바로 앞 테이블에 놓인 사진들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외면하며 하시는 다시 침대에 다시 털썩 누웠다. 이 30여 장의 사진을 찍고 3일간 여러 명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고, 하시는 더 이상 미친놈이라는 시선을 받기 싫어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왠지 본능적으로 그 사진들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진을 삭제할 수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헛것을 본 게 아니라고, 스스로 확인을 하고자 인화한 사진들은 며칠째 테이블 위에서 하시를 괴롭히고 있었다.

플랏메이트인 라파엘이 하시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하.. 혼자 살고 싶다’

라파엘은 거침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별 감흥 없이 사진들을 빠르게 훑어본 뒤, 테이블 위에 가볍게 던져 돌려놓았다. 그러다 다시 상체를 구부려 사진을 보았다. 그때 하시는 실낱같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라파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너 이 여자애 좋아해서 이렇게 많이 찍었지. 똑같은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그냥 빨리 라파엘이 이 방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하시는 자신이 나가는게 더 빠르겠다고 판단하며 외출할 채비를 시작했다.

‘내가 정말 미쳐버린 걸까’

하시는 혼돈 섞인 잡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물, 사과 두 개, 그리고 버터빵을 배낭에 챙겨 카메라와 함께 어깨에 맸다.

“사진 찍으러 가는거야?”
“응”
“너도 좀 놀면서 해라,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좋은 사진들이 많이 찍히는거야”

이 아무 생각 없는 팔자 좋은 놈이 당장 내 방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또 한 번 생각을 하며 하시는 쓴 미소를 띠며 방에서 나갔다.

*******

‘제길 파엘라’

촬영에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식은 왜 인생을 즐기라는 둥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라고 하시는 생각했다. 사진을 찍는 일이 행복해서, 꿈이 생긴 내가 자랑스러워서 시작한 이 길이, 지금은 왜 이리도 지옥 같은 것인지.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지. 또다시 그렇게 이유 모를 짜증 섞인 자괴감에 빠지려는 순간, 하시는 문득 그 빨간 가방의 여자애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미친놈아’

부랴부랴 도망치듯이 사진들의 잔상을 머릿속에서 흩트리며 하시는 다시 촬영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은 잘 찍히지 않았다.

*******

경직된 채 의자에 앉아있는 하시를 마주한 직원이 하시의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넘겼다.

“잘 봤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하시 씨는 왜 영국에서 사진을 찍으시나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신선한 시각을 가진 영국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수 십 번도 받은 질문이었다. 마치 아이폰에게 오늘의 날씨를 물었을 때 대답해 주는 시리처럼 반사적으로, 기계적으로 하시는 대답했다. 그러자 숨 막히는 적막이 둘 사이에 이어졌다.

“그렇군요, 결과는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일 초가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었다. 갑자기 자신감에 차 대답한 자신의 말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시는 이 에이전시에서는 절대 연락이 오지 않겠구나 확신하며 건물을 벗어났다.

*******

하시는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아주 거칠게 편의점 문을 열며 들어갔다.

‘하.. 담배..’

아주 좁은 편의점을 세바퀴 반을 돌고서 하시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편의점 직원에게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한 뒤 편의점을 나왔다. 그리고 편의점을 들어갈 때와는 아주 상반된 힘없는 걸음걸이로 집으로 향했다. 집 현관문에서부터 시끄러운 음악이 거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엘라가 또 친구들과 함께 플랏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집에 가고싶다’

정말 그 누구와도 인사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던 하시는 최대한 파엘라 일행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방은 아주 깜깜했다. 그러나, 아침에 파엘라를 피해 서둘러 나오느라 커튼을 치지 못한 덕에 작은 창문에서 가로등 빛이 조금이나마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그 빛은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하시는 자연스레 또다시 테이블 위의 그 사진들에게 눈길이 갔다.

‘왜 나한테는 이런 일만 벌어지는 걸까’

인생을 즐겨야지, 하시 씨는 왜 사진을 찍으시나요, 왜 영국에서, … 오늘 하루 종일 하시의 가슴을 후벼 판 말들이 귓속에 윙윙 맴돌며 괴롭혔다. 그 순간, 하시는 울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있는 사진을 손으로 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자신이야말로 알고 싶었다. 왜 그 좋아하는 담배도 돈이 없어 못 피고, 가족과 친구의 응원은 부담스러워지고, 그들과 점점 멀어지면서까지 이곳에서 이렇게 궁상을 떨며 버티고 있는 걸까.

하시는 그 어떤 것 보다도,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자신을 못 미더워 하는 이 현실에 치를 떨며 테이블 앞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창문을 통해 스며든 가로등 빛이 하시의 눈에 단 한 장의 사진을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사진 속의 그 여자애가 하시의 카메를 똑똑히,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집을 찾아서 (가제)

“무시를 하긴 누가 무시를 해? 내가 안 받을 이유가 뭐가 있어? 바쁘다 보니까 경황이 없어서 못 받은 거지.”

비상계단으로 들어가는 문 넘어 들려오는 다툼 소리에 하시는 지금 이 문을 열고 촬영 준비가 되었다고 얘기해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주저했다. 그리고 귀를 문에 조금 더 가까이 대자 깊은 한숨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내가 애도 아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엄마한테 다 말해야 돼? 그냥 날 좀 믿어주면 안 되는 거냐고.”

하시는 피식하고 웃으며 문에서 귀를 서서히 떼었다. 그리고 이 문을 당장 열어 자신이 엄마와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지 모른 채 혼란뿐인 통화의 덫에 빠진 그녀를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이양, 지금 인터뷰 시작할게요.”

퉁명스러운 말투로 전화를 서둘러 끊은 메이는 멋쩍음과 후회가 담긴 꽤나 어두운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앉았다. 하시가 카메라를 등지고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모습을 확인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하시는 한번 더 그 한숨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메이의 두 번째 한숨 소리를 들은 하시는 컴퓨터 화면에서 고개를 서서히 떼며, 일 년 전 자신이 내쉬었던 한숨 소리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날을 회상했다.

– 일 년 전 –

벤치 맞은편 식당에서 풍기는 치킨 냄새에 하시는 가방에서 사과 한 개를 꺼내며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어떻게 여섯 시간이나 길거리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건질게 한 장도 없는 것인지 한탄했다. 그때 하시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엄마’라는 이름을 확인 한 후,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넌 왜 이 머나먼 영국까지 와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냐 이 불효자야’

하시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KFC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대체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있을까 라는 깜깜하기만 한 걱정을 하는 동시에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니, 받지 못한 것이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계속 진동이 울리는 전화를 주머니에 품은 채 하시는 다 먹은 사과를 버린 후 벤치에서 일어나 카메라 렌즈를 다시 거리에 갖다 대었다. 걷다보니 보인 빨간색 전화부스, 마치 궁전같은 새하얀 집들이 저 멀리까지 길게 늘어진 길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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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분위기에 취해 무작위로 셔터를 누르던 중 하시의 파인더에 길 건너편 한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유독 눈에 띄는 빨간 가방을 멘 그 여학생은 세상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걱정은 찾아 볼 수가 없는 얼굴이네. 하아. 그래, 딱 봐도 돈 걱정, 사람 걱정, 앞날 걱정이라곤 한 번도 안 해보게 생겼다 너’

예쁘장한 저 여학생이 내 여자친구고, 저 또한 근심하나 없는 얼굴로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헛된 상상을 잠시나마 하며 하시는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그녀를 쫓아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어?’

하시는 파인더에서 눈을 급히 떼고 카메라 스크린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뭐야 이 사진’

스크린 속에 비친 그 여학생은 보이지도 않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다, 마치 켜져 있던 촛불이 거지 듯이 화면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30여 장의 사진을 처음부터 다시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스크린 속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빨간 가방을 멘 그녀는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집과 집 사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Photo by Rona

안녕하세요? 유코잡스 매거진을 통해 ‘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되다’를 총 5부작으로 연재한 박서영입니다. 요번 회에는 첫 연재를 마치고, 간단한 후기로서 몇 자 올립니다.

이번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영국을 사랑하게 된 맨 첫 번째 이유, 영화의 다양한 장르 중 제가 가장 사랑하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저만의 관점에서 해석, 보여드리고 싶다는 취지에서부터였습니다. 어떤 주제에 포커스를 맞춰 쓰면 가장 많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아무 고민 없이 해리포터에 대한 생각을 써 내려가면서 자연스레 ‘이방인’이라는 테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왜 많은 장르 중 판타지일까,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저의 좀처럼 솔직해지지 못하는 성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상황, 감정 등 저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사람들은 이 일을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두에게 상처는 있고, 어두운 면이 있기에 사랑하는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저에게는 나로서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이 싫고, 어두워지는 것이 싫어,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 채 언제나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밝은 위로가 돼 주었던 것이 바로 판타지 영화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판타지 영화의 장점은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의 삶을 담담히 담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상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때문에 어느 정도 나와는 거리를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상처를 후벼파 함께 아파하면서, 걱정하면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은 채 웃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저에게는 둘도 없이 매력적인 장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판타지물을 접하고, 해석하면서, 작가들이 그 누구보다 솔직하게, 과감하게 자신들의 인생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결코 해리포터와 같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스토리는 탄생되지 않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리즈로 연재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만, 이형욱 선배님으로부터의 제안으로 시리즈를 제안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저에게도 큰 경험,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집필하면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감사드린다는 말씀 이번 기회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연재를 하면서 소설과 영화와의 차이를 심도 있게 분석한 뒤에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매번 아쉬워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써 내려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모든 판타지 영화의 원작,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인사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댓글에 관련 좋은 글 알려주신 Yoony Jung님, 이자리를 통해 감사드립니다.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읽고 공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제 이야기를, 제 주의 사람들의 인생을 그린 이야기가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나’에게 밝은 위로가 되기를, 마음을 열 수 있는 용기가 되기를 빌며 이번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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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꿈이 있는 사람들을 ‘반짝인다’라고 소설이나 영화 속에선 표현하곤 한다. 그리고 꿈이 없는 사람들은 꿈이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한다. ‘꿈이 있는 네가 부럽다’라고.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기란 여전히 녹록지않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물도,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거나 혹은 낡는 법이고, 꿈 또한 마찬가지이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배운 가장 뼈저린 교훈은 ‘영원한 꿈’은 그 어디에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마치 꿈을 잃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필자가 일본을 떠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짐하기까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시간이었음에는 분명했다. 그곳에서 꾸었던 모든 꿈들이 ‘떠남’으로서 다 잃어버리는 기분이었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세상은 결코 내가 선택하기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사는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타인이라는 이유로 예외 없이 훌쩍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처지이며, 나라를 떠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일터를 불현듯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꿈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을 잃어버렸을 때, 필자는 ‘또다시 한계에 부딪혔구나’라고 생각한다. 왜 모든 꿈에는, 그것도 ‘이제 시작이다’ 혹은 ‘거의 다 왔다’하는 매 순간에 ‘limit’이 존재하는 걸까.

영화 나니아 연대기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주인공이 우연히 옷장을 통해 ‘나니아’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 부분을 참 좋아하는데, 그것은 이야기가 옷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매개체를 통해 ‘뜻밖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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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뜻밖에’라는 콘셉트는 나니아 연대기의 시작이자 끝을 상징하기 때문에 더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The Chronicles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편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네 주인공의 배경 또한 매력적이며 공감이 크게 된다. 그들은 전쟁 중에 부모와 떨어져 외딴 시골로 보내지는데, 그때 그들이 느꼈던 심정은 아마도 ‘아, 내 미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안는 구나’하며 절망하였을 것이다. 그런 절망 속 무의미한 나날을 지내다 나니아라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2

뜻밖에 나니아 세상을 만났듯이 주인공들은 또다시 뜻밖에 그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만다. 그 후 그들은 나니아를 그리워하고 언젠간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형제가 나니아의 왕, 왕비의 운명이기에 나니아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현실세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삶의 의미를 ‘뜻밖에’ 나니아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좋아하고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니아에도 ‘limit’은 존재한다. 뜻밖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영원히 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닌, 어느 한 시기에 다다르면 되돌아갈 수 없는 세상이 바로 나니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Chronicles of Narnia: Prince Caspian’, ‘The Chronicles of Narnia: 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이 두 편을 걸쳐 네 주인공들은 갑작스레, 그러나 후회 없이 나니아와 이별하기로 선택한다. 나니아의 수호신과 같은 아슬란은 그들이 떠날 때 말한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고 충분히 성장했다’라고. 그 누구도, 사형제가 나니아 세상에서 분리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의 이유마저 없어졌다고 얘기하지 못할 것이다. 현실세계에 돌아와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형식을 띈 무언가로서 꿈은 그들에게 다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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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네 주인공 중 루시가 나니아 마지막까지 총 세 번에 걸쳐 나니아 세계와 분리되었었다. 처음엔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는 슬프지만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을 안고, 마지막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루시는 이 세 번의 경험을 통해 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번의 리밋을 경험하면서 루시는 크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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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time limit’이 존재하기에, 영원한 꿈은 결코 없다.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는 그 리밋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꿈을 빼앗긴 느낌마저 들곤 한다. 그러나 사실, limit이라는 존재가 나 자신을 긴장하게 하고, 미루어 놓고 있었던 꿈을 위한 선택들을 재촉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얼마나 목표를 위해 얼마큼 좌절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을 되돌아볼 소중한 시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타지 그 어딘가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타지 그곳에서 limit을 만나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 결국 모두에게 limit은 불현듯 찾아온다. 아마 그 순간이 꿈을 향해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좌절이며 마지막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limit을 기회 삼아 꿈에 대한 재인식을 거쳐 성장을 거듭할 수 있다면, 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시시 때때 각기 다른 모양을 띈, 그러나 내내 같은 색으로 반짝이는 꿈을 지켜낼 수 있다.

(시리즈 끝)

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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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 이상’,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라는 말은 전편에서 언급했던 국적처럼 살아가는 내내 쫓아다닌다. 홈그라운드가 아닌 곳에 산다는 이유로 수많은 장벽에 부딪히고, 그러다 결코 넘지 못할 것 같은 장벽 때문에 결국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일본에서 알게 된 한 선배는 보도부 디렉터가 꿈이었다. 외국인이라는 큰 벽을 넘고 그 선배가 제작회사에 취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느꼈고, 무모해질 용기를 얻었었다. 그러나 입사 후 5년 동안 내가 바라본 그 선배는 보도부의 근처도 가지 못한 채 사내 인사팀, 영업팀, 홍보팀 등 꿈과는 거리가 먼 곳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현실’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능력도, 열정도, 노력도 그 무엇 하나 뜨겁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어쩌면 나에겐 절대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악에 받쳐 말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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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유니버스 (마블 세계관)에서는 다양한 영웅이 등장하는 만큼 많은 악역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영화 ‘토르’에 등장하는 ‘로키’는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다. 물론 로키를 연기했던 톰 미들스턴의 인기도 한몫했지만, 캐릭터 그 자체도 모성애를 불러일으킬 만큼 매력적이다. 로키는 입양아로, 어린 시절 토르와 함께 자랐다. 로키의 친아버지가 양아버지의 양숙이라는 배경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풀자면, 그는 토르만큼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이 평생 살아온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이 강해질수록, 로키는 토르가 물려받게 될 왕좌에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아버지는 로키에게 왕좌를 차지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라 느낀다. 야망이 있고, 그만큼의 능력 또한 가지고 있는 로키는 왕좌가 코앞에 있으면서도 절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러면서 로키는 어긋나기 시작하고, ‘악역’이라는 적대되는 캐릭터로 나타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사실 로키가 이렇게 폭주하게 된 이유는 본인 스스로가 엄청난 착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되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그 자리에 오르기 바빠 ‘무엇을 하고 싶었었는가’에 대해 잊어버리곤 한다. 극 중 로키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로키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강해질수록 오르고 싶은 자리는 바로 왕좌였고, 결국 그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왕좌에 올라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왕좌에 올라야 만이 만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로키는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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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확신할 수 있는 대답은 간단하다. 그가 왕좌라는 ‘자리’에 너무나도 집착한 나머지, 자아에 대한 피해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민족’ 출신의 입양아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졌었을지 모른다. 로키가 분노를 표출하는 순간 자신은 ‘아스가르드인이 아니니까’라고 줄곧 외치는 씬에서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고 존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이곳의 뿌리를 이어받지 못했다는 자격지심, 소외될 것만 같은 불안감, 신뢰받지 못할 것 만 같은 두려움 등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불안한 감정에 휘말리게 된 로키는 더욱 ‘자리’에 집착하고 ‘소속’에 얽매이게 된다. 로키가 만약 왕좌의 자리를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지옥 같은 마음속에서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리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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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르’ 2편에서 토르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기 위해 왕좌를 포기한다. 이 씬에서 로키는 드디어 왕좌를 차지했다며 기뻐하지만 참으로 우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로키가 왕좌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할지라도, 가족과 친구를 잃으면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토르와의 진흙탕 싸움을 벌이지 않았어도 됐었다. 결과적으로 왕좌는 로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키 자신은 ‘외부인’이라는 틀에 얽매여 괴로워했지만 토르와 로키의 마지막 대화 신에서 알 수 있었듯이 토르에게 로키는 그저 ‘형제’였고, 결코 외부인이 아니었다.

아웃사이더로서 살다 보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고 싶은 무언가’ 가 아니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다. 외국인으로서의 ‘자리’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난 잘 해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명패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 자리를 결코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오는 절망감은 말로 이룰 수 없다. 잘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서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에서 말한 ‘어쩌면 나에겐 절대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절망했던 선배는 기다리는 것을 접어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보도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일본 방송에도 소개될 만큼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나라를 돌보고 지키고 싶었던 마음을 잊은 채, 욕심에 사로잡혔던 로키의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고민되는 그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가 될 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때로는 과감히 포기하자고.

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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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왔는가’는 결코 변할 수 없는 나의 역사의 한 부분이고, 이 수식어는 삶에 있어서 수많은 장단점을 가져다 준다. 전편에서 ‘출신’이라는 의미가 여정을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기회라고 말했다면, 이미 많은 시간을 바깥에서 지내온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 걸까. 타지생활을 시작하고 5년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 의미를 ‘출신’이 사람을 과소평가 하게 만드는 것이다 라고 단정 지으며 좌절한 적이 있었다.

프로도도 여정 속에서 이와 같은 좌절을 하게된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 샤이어에 있었을 때보다 몇 십 배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과도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도가 호빗족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까지 알았던 호빗족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그를 과소평가하고 마음대로 단정 짓는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반지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보로미르가 반지를 탐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만약 반지 운반자가 프로도가 아닌 아라곤이나 레골라스였다면 그림은 다르게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반지의 악한 힘을 결코 프로도가 끝까지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반지에 대한 실성이 극으로 달했을 때 “Curse you! And all the Halflings!”이라며 프로도에게 외치는데, 이 대사로 보로미르가 프로도에게 가진 편견이 어땠는지 추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프로도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로, 그리고 ‘다른’존재로 보이는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결국 홀로 여정을 마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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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골룸’의 출신이었다. ‘골룸’은 호빗족 출신이라는 설정인데, 그 이유는 영화의 ‘선’의 중심 그리고 ‘악’의 중심이 둘 다 같은 종족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샘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로도가 골룸을 길 안내자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스미골’이라는 골룸의 진짜 이름을 부르며 그와 동반하게 된 건 어쩌면, ‘출신이 같다’라는 이유만으로 프로도의 마음속 어딘가 실낱 같은 희망 혹은 믿음을 갖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프로도는 그 선택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어떤 곳보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민감했던 일본에서의 생활에 있어서 철칙은 ‘beyond Nationality’였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 아니라, 오로지 나만을 보고 판단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도전할 때 어디에서 왔는지 최대한 배제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러려고 하면 할수록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라는 질문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대답해야만 했고, 그 과정은 느낀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프로도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홀로 여정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을 보면서 크게 공감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마 프로도도 자신을 획일적으로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지쳐, 혼자가 되려 한 건 아닐까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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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로도가 골룸에게 가진 실낱 같은 믿음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도 모르게 믿고 배신당하는 경험 또한 겪었기 때문이다. 수없이 겪은 과소평가가 가져다준 강박이 처음보는 사람을 섣불리 신뢰하고, 그 신뢰는 쓰디쓴 아픔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경험이, 마치 프로도처럼 스스로 묶여있었던 한국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국적은 같을지 모르나 서로 서로가 엄연히 ‘다르다’ 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미 많은 세월을 여정에 바친 사람에게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것은 강박과의 전쟁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수도 없이 과소평가 되면서 그게 진정 과소형가에 불과한지 아니면 능력이 여기까지 인지 혼란스러워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 받으며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어디에서 왔지만’ 혹은 ‘어디에서 왔기에’ 와 같은 편견에서 벋어나 ‘어디에서 왔고’, 그리고 나서부터의 ‘진짜 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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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나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를 갖게 된다. 누군가의 딸, 친구, 선후배 등등이 그러하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대표적으로 나를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국적(Nationality)’이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대화할 때, 국적은 굉장히 큰 메리트를 가져다 준다. 서로의 서툰 언어능력을 배려하고, 문화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발점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다 보면, 가끔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국적이 큰 시련을 안겨다 줄 때도 있다.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 이미지로 나를 판단하게 하기에, 사람을 사귀거나 일을 함께 할 때 국적이 아닌 오로지 ‘나’라는 존재만을 봐주길 바란 적이 많다. 가끔 뉴스에서 들리는 사건의 원인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들으면 괜스레 함께 비난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럽지만, 외국에서의 한 사람은 곧 그 국가의 이미지이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사실은 ‘아웃사이더’인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영화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the Ring)를, 영화 ‘호빗’에서는 금으로 가득 차 있는 외로운 산(Lonely Mountain)이라는 ‘악’의 대명사를 중심으로 한 모험 판타지 작품이다. 나는 두 작품을 보며 ‘출신’이라는 소재를 매우 민감하게 다루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전에 다뤘던 ‘해리 포터’보다 오히려 훨씬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큰 세계관 속에는 여러 종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의 첫 신은 절대반지가 마법사, 요정족, 인간, 그리고 난쟁이족에게 나누어졌었다는 장면이다. 출신을 드러내는 연출을 영화의 가장 서두에 넣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게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며 영화를 보니 “Hobbits…(호빗족이란..)”, “Dwarves(난쟁이족이란..)”이라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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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의 주인공들은 서로가 서로를 표현할 때 곧잘 종족으로 묶어서 언급하며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혀를 끌끌 차며 ‘하여간’이라는 표현과 함께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의미를 담은 이러한 표현은, ‘외부인’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그 어떤 액션신이나 감정 신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부터 현실 속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호빗족이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절대반지로 인해 원정을 막 떠나게된 프로도나, 그의 삼촌 빌보가 난쟁이족과 여행을 떠나게 되는 순간을 보면, 한국을 떠나 이제 막 외국 생활을 시작했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원정을 떠나게 되기 전까지, 살면서 그들은 스스로가 ‘호빗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영화 속 주인공들의 고민들을 보며 우리들은 느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라고.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어떤 곳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이다. (Ep.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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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세상의 중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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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그곳에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이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때로는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 별것 아닌 일에도 용기 내기가 힘들어진다. 처음으로 타지 생활을 시작했던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가 걸맞은 나라였다. 같은 아시아권이기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책이나 인터넷에선 알려주지 않았던 이문화를 접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가끔은 나 자신이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과는 섞일 수 없는 그저 ‘다른 사람’임을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반대로, 5년여간의 일본 생활을 뒤로하고 가게 된 ‘이민 국가’의 대표격인 호주에서의 생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달리,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보다 ‘밖’에서 온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유학을 온 나 또한 ‘다른 사람’이 아니었고, 나 스스로가 누군지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영국 또한 호주와 같이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나라다. 호주는 이 나라만의 고집하는 규율이나 풍습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영국은 깊은 역사와 문화를 지닌 만큼,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영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화가 있고, 지켜야 하는 그 나라만의 풍습이 있다. 앞으로 펼쳐질 영국에서의 생활을 위해 영국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끼게 되는건 호주와 또 다른 색깔을 지닌 다민족 국가인 그곳에서의 시간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영국의 이러한 색 짙은 문화나 풍습이 밖에서 온 나와 같은 사람들을 ‘외부인’으로 만들기에 두렵기도 하다. ‘다른 사람’으로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할까.

Photo: Courtesy of Harry Potter Facebook

일본에서 타지 생활을 시작한 후 봤던 ‘해리 포터’는 어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영국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우리’가 영화 ‘해리 포터’의 주인공 삼인방과 닮아있지 않나 생각한다. 세 주인공 중에서도 가장 닮은 사람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아닐까 싶다. 마법세계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였기에, 그녀는 호그와트 입학 전 그녀는 공부를 거듭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그녀는 호그와트에서 주목받는 가장 가산점을 많이 받는 예쁜 모범생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녀의 학교 생활 모습은 그저 위태로워 보였다. 특히,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말포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은 ‘외부인’으로 취급당하는 내 신세를 보는 듯 하였다. 누구보다도 마법 세계를 사랑 하지만 타인 취급을 받으며 인정 받지 못하는 여러 장면에 나는 헤르미온느를 그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계단 밑 좁은 방주인 고아 해리는 마법 세계에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인생을 맞이한다. 해그리드가 처음으로 해리를 데리러 왔을 때, ‘굳이 가고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을 건넸지만, 해리를 새로운 세상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삶을 바꾸어 놓았고 잠재 되어 있던 능력을 마음껏 선보이게 된다. 우리 또한 한국을 떠나 이 곳에 오기로 ‘선택’을 하였다. 분명 우리도 이곳이기 때문에 마음껏 뽐내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꿈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법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위즐리 가족은 ‘순수한, 고귀한 혈통’을 고집하는 말포이 가족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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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ourtesy of Harry Potter Facebook

론의 상징이기도 한 빨간 머리(Ginger hair)는 실제로 영국에서 차별 대상이기도 했었는데, 아마도 작가는 론 스스로도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 혹은 ‘다름’이 성장 배경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비추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론이 빨간 머리가 아니고 지극히 평범함 생활을 보내 미처 ‘다름’을 경험하지 못 했던 인물이었다면 해리와, 그리고 머글 세계에서 온 헤르미온느와 친구가 되는건 어쩌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과 같은 ‘다른 사람’을 만나 그로써 진정 ‘다름’을 인정하고 ‘나답게’ 있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손을 빳빳이 들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어 지길 절실하게 기다렸던 헤르미온느, 마법 세계에서 이기 때문에 잠재되었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해리,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만나 ’나’ 다워 질 수 있었던 론. 사실 소설 해리포터 삼 인방은 경우에 따라선 그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괴짜’ 혹은 ‘아웃사이더’로 끝날 수도 있는 인물들이다. ‘해리 포터’의 책 표지를 보면 작가의 이름이 ‘J. K. Rowlling’으로 표기되어있다. 이 것은 출판 당시, 출판사 측의 조앤 롤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위한 의도였고, 그 말인즉슨 여성에 대한 적지 않은 차별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영국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만큼 다양한 차별도 존재하는 나라라고도 불리는데, 조앤 롤링 또한 ‘해리 포터’라는 작품에서 그러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Photo: Courtesy of Harry Potter Facebook

조앤 롤링이 수많은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고 영국 문학사의 큰 획을 그은 인물이 된 것처럼, 해리포터 주인공 삼인방도 마법 세계의 크나큰 빼려 해도 뺄 수 없는 ‘버팀목’이 된다. 그리고 버팀목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영국에서 살면서 많은 순간 자신이 ‘아웃사이더’임을 느낀다. ‘밖’에서 왔기 때문에 떨쳐내기 힘든 편견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보통 사람들이 실수와 나의 실수는 천지 차이처럼 보이게 될까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가 아닌 이곳에서 무언가의 중심이 돼 보고자 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수 없이 좌절한다 해서 우리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기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답게’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해야 만 한다.

만약 터득한다면, 우린 아웃사이더이기에, 그렇지만 누구보다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세상의 중심이 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Reference: Harry Potter an the Chamber of Secrets, Harry Potter and Philosopher’s stone